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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논란에도 여전히 “통장 삽니다”···연락했더니 한 말[점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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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납치·감금 범죄의 심각성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여론이 주목하고 캄보디아 당국도 단속에 나서면서 많은 범죄단지가 철수했는데요. 범죄조직이 한국 청년들을 유인한 수단인 ‘대포통장 범죄’는 이를 비웃듯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대포통장 범죄는 왜 늘고,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경향신문 배재흥 기자가 직접 대포통장 ‘모집책’에게 연락해봤습니다.

오늘도 대포통장이 팔리고 있다


대포통장이란 통장의 명의자와 실제 사용자가 다른 통장을 뜻합니다. 일종의 차명계좌로 자금세탁이나 보이스피싱, 사기, 마약 거래 등 온갖 불법적인 일에 동원됩니다. 범죄조직들은 대포통장을 사거나, 피해자를 속여 통장만 가로채는 등의 방식으로 계좌를 확보합니다. 캄보디아에 똬리를 튼 범죄조직들도 대포통장 구입을 미끼로 한국인들을 유인한 뒤 통장과 신분증을 빼앗고 감금했습니다.

캄보디아 사건이 이슈가 된 뒤에도 대포통장 거래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경향신문이 한 포털 사이트에 ‘통장 삽니다’라고 검색해보니 모집책들이 쓴 불법 광고 글이 무더기로 나왔습니다. 그중 한 명인 모집책 A씨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A씨는 기자에게 ‘어떤 통장을 가지고 있느냐’거나 ‘가상자산 거래소 계정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A씨가 기자의 통장 종류를 캐물은 건 대포통장마다 등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코인 거래에 쓰이는 통장은 ‘코인장’, 적발될 위험이 적은 범죄에 사용되면 ‘안전장’, 적발될 위험이 크면 ‘테크장’으로 불립니다. 코인장은 ‘오가는 돈의 10%’를 미끼로 피해자를 유혹합니다. 안전장은 150만~200만원, 테크장은 그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사겠다고 범죄조직은 말합니다.

A씨도 고수익을 미끼로 내걸었습니다. 그는 “하루에 억 단위로 돈이 오가니 돈이 될 것”이라며 코인장을 팔라고 기자에게 제안했습니다. A씨의 제안은 시세(?)대로 ‘통장에 오가는 돈의 10%’. 하루에 1억원이 입출금되면 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A씨는 대신 ‘중국으로 직접 와서 공동생활을 해야 한다’고 조건을 걸었습니다. 캄보디아 범죄단지에 갇혔던 이들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캄보디아 사건에 관해 물으니 A씨는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무식해서 그렇다”면서도 “무얼 믿고 큰돈을 당신에게 입금하겠느냐”고 했습니다. 대포통장 제공자가 돈만 받고 잠적하면 안 되니 곁에 두고 감시하겠다는 것이죠.

범죄가 들통나도 약한 처벌을 받도록 도와주겠다는 회유도 있었습니다. 기자가 접촉한 또 다른 모집책은 개인 통장을 넘기면 월 150만원, 법인 통장을 넘기면 월 200만원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적발 위험이 적은 불법 도박에 통장이 사용될 거라면서요. 만약 대포통장이 발각되더라도 “우리 매뉴얼대로 경찰에 말하면 기소유예나 벌금 300만원 사이로 나올 것”이라며 “벌금도 대신 처리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누가 봐도 믿을 수 없는 허풍입니다. 우선 범죄조직이 불법 도박에만 통장을 쓴다는 보장은 절대 없습니다. 넘어간 통장은 높은 확률로 보이스피싱에 악용됩니다. 범죄가 발각됐을 때 도와주겠다는 약속도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죠.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런 유혹에 넘어가고 있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보이스피싱 관련 대포통장 범죄로 3만3074명이 검거됐습니다. 올해 8월 기준 검거자 수는 5860명으로 지난해 전체(5639명)보다 많았습니다.

범죄에 휘말리는 이들이 늘어난 데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디지털 접근성이 높아지며 이런 범죄에 노출되는 빈도가 늘었습니다. 또 온라인·비대면 금융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대포통장을 만들기도 쉽고, 범죄조직이 국경을 넘어 비대면으로 범죄를 저지르기도 용이해졌습니다. 올해 상반기 경기복지재단 불법사금융피해지원팀에 접수된 피해 신고를 보면, 불법 사금융·추심에 활용된 대포통장 1422개(중복 제외) 가운데 인터넷은행 3사(토스뱅크·카카오뱅크·케이뱅크) 계좌가 51.1%인 727개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범죄를 막기 위해 무작정 통장 개설 문턱을 높이기도 어렵습니다. 금융서비스를 멀쩡히 이용하고 있는 소비자들의 불편을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6년 금융당국이 대포통장 범죄를 근절하겠다며 목적이 증빙되지 않은 계좌의 이체 한도를 줄였지만, 학생·고령층 등 소득 증빙이 어려운 이들의 반발로 7년 만에 한도가 다시 올랐습니다.

전문가들은 대포통장 대여 자체가 심각한 범죄라는 점이 더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남에게 통장을 대여한 사람은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돈을 더 주겠다는 말에 속아 전달·인출에 가담하면 더 큰 처벌을 받을 수도 있고요.

청년들이 ‘한탕’ 범죄에 혹하지 않도록 이들의 현실을 잘 돌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청년 고용률은 지난 9월 기준 45.1%로 17개월째 하락했고, ‘쉬었음 청년’은 늘어만 갑니다. 20대의 가계대출 연체율도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높습니다. 범죄의 마수는 불안한 마음을 파고들기 마련입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일자리뿐 아니라 ‘빚 탕감’이란 미끼에 속아 범죄의 덫에 빠진 청년이 적지 않다고 한다”며 “청년들의 처지를 돌아보고 이들이 일어설 수 있는 지원책을 다각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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